1.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30대 남자 직장인입니다. 하나마나한 소리를 자주하며 농구하는 것과 야구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관심사가 다양하지만 앎은 그 이상으로 얇습니다.
2. 혁이님의 집밥 하면 일단 떠오르는 게 파스타입니다. 면성애자(^^)이신가요?
일단 면을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 외갓집에서 자랐었는데 걸어서 3초 거리에 직접 국수를 뽑는 맛있는집이 있었고, 할머니도 워낙 솜씨가 좋으셨어요. 그때부터 면식은 익숙해졌죠. 그리고 파스타를 주로 해먹는 건 무엇보다 간단해서예요. 시공간의 제약 속에 좋아하는 식재료를 이용한 식사를 하기엔 파스타만한 게 없으니까요. 익숙해지면 요리 완성과 동시에 정리도 마치고요. 물론 세상에 간단한 국수는 없지만요.
3. 본래 한식을 즐기지는 않는 편인가요? 면식 외에 고기를 즐겨 드시는 거 같았어요.
네, 어렸을 때부터 한식을 즐기지 않아요. 김치, 나물 이런 거 다 안 좋아하고 고기, 피자를 워낙 좋아했습니다. 인천에서 자라 좋은 해산물을 접할 기회도 많았지만, 그것도 별로였어요.무엇 보다 한식의 한상차림이나 간 맞추기는 음… 여전히 이해가 잘 안되거든요. 한상에 온도도 안 맞는 거 다 올려놓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잖아요. 조리법도 대부분 만드는 사람의 노동을 갈아 넣어 만드는 거 같고요. 게다가 제가 국을 안 먹다보니 그런 경향은 더더욱 강해졌죠. 좋아하는 반찬 하나만 있으면 되는 식성을 갖고 있다 보니, 밥이나 면을 기본으로 하여, 조리한 요리를 더하는 형태를 훨씬 선호하는 것 같아요.
4. 또래의 다른 남자들에 비해 집밥을 해먹는 횟수가 잦은데, 특별히 집밥을 해먹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렸을 때부터 외식이 잦았어요.엄마랑 같이 백화점 가서 피자 먹거나, 삼촌이 하시는 고깃집 가는게 행복이었는데 성인이 되어서는 파스타가 그 역할을 대신 했었죠. 학비를 벌어서 학교를 다녀야 했기 때문에, 알바를 계속 했는데 파스타는 한 접시에 만원 정도니까, 부담이 크더라고요. 최저시급이 3,500원도 안되는 시기였으니 형 누나들한테 많이 얻어먹기도 했지만, 그래서 군대에서 밥 만들던 가락이 있으니 한번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그래서 기성 제품들을 이용해 만들어 봤어요. 집에서 만들면 한 접시당 재료비는 사먹는 음식의 반의 반인데, 시급을 더해도 그거보다 비싼데다, 일단 밖에 나가서 먹으면 식비 외에도 쓰게 되는 비용도 있잖아요. 그렇게 좋아하는 파스타부터 요리를 해보게 된 거죠. 그리고 할 때마다 조금씩 느는 게 보이니 재밌었고, 맛도 어느 정도 나기 시작하니 다른 요리들도 이것저것 시도해보게 된 거고요.
5. 그렇다면 가장 자신 있는 파스타 메뉴와 나만의 요리할 때의 요령이나 비결이 있다면?
업으로 하는 분들이나 정말 잘하시는 분들과 비교하기에는 많이 모자라다보니, 사실 그렇게 자신 있는 건 없고요. 기본이 되는 알리오 올리오나 봉골레는 그래도 많이 해먹다보니 손에 익은 정도예요. 까르보나라, 로제도 좋아하지만 그 이외의 메뉴나 식재료는 먹고 싶은 게 생기면 그때그때 한번 씩 해보면서 목록에 더하고 있어요.
비법이라면… 검색을 많이 활용하죠. 무슨맘 블로그 같은 거 따라하지 말고 좋은 요리책이나 레시피를 찾아서 해보세요. 두어 번 망해보면(^^) 그 다음부터 괜찮더라고요. 네이버매거진캐스트에 올라오는 잡지 속 레시피는 어떤 건 ‘꽝’인데 때론 좋을 때도 있어요. 무엇보다 기본 레시피로 몇 번 해보면서 망해보기도 하고, 때론 잘 되면 거기에 자기 취향을 더한다고 생각하면 편해지는 거 같아요. 그리고 정량과 비율을 지키고, 소금과 후추는 좋은 것 쓰기, 음식 레시피에 나오는 온도를 정확히 지키기 정도인데, 어째 하나마나한 이야기네요.
6. 고기 요리도 그렇고, 파스타도 그렇고, 칵테일도 생각나는 대로 툭툭 잘 만들어드시는 거 같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주방을 드나들었나요?
제가 생각나는 대로 막 만드는 건 사실이예요 하핫. 그래도 그전에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봐요. 가령 진토닉을 만든다고 하면 기본 레시피를 알아보고, 그 후에 제 입맛과 상황에 맞게 가감하지요. 저는 입대 전까진 할 줄 아는 요리는 라면 1인분 밖에 없었어요. 밥도 제대로 못했고요. 집에 와도 혼자였고…. 하지만 군대(의무소방)에서 현금 1만원으로 5인의 점심/저녁(쌀과 김치 제외)을 만드는 걸 몇 달 해보니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수준은 되더라고요. 그때 용기를 얻었던 게 힘이 되었고, 서빙 알바를 하면서 음료도 만들어보고 주방에서 하는 걸 어깨너머로 배우기도 하고요. 간단한 것들은 비슷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니까 하나 해보면 그 다음이 쉬운 경우가 많죠.
7. 그런 정보들이 쌓여서 그럴까요? 요리에 관심이 많은 편 같습니다. 요리 쪽 동호회 활동은 혹시 하신 적이 있나요?
동호회 활동은 한 적이 없고, 요리에 대해서는 복합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어디에서 만들어서 어떻게 소비하느냐에 따라 함의가 많이 달라지니까요. 제가 해먹는 건 “간단하고 맛있게 먹자 “정도이고 끼니를 단순히 때우자고 생각할 땐 맛을 크게 따지지 않아요. 그리고 ‘집에서 만든 건강한 음식’같은 슬로건에도 큰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식재료에 대해서는 좀 다른 입장인데, 국내에서 유통업자와 일반 소비자들의 태도, 그리고 윤리적인 생산과 소비에 대해서는 고민이 되더라고요. 지금처럼 대량으로 소비를 하면서 먹으려면 공장형 사육이 필수적인데,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효율과 효과, 그리고 그에 따른 윤리는 어디에나 문제이기도 하고요.
8. ‘집밥 백선생’이후 한동안 집밥의 정의, 효용성 등을 두고 SNS에서 말이 많았었는데요. 현대인의 집밥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그 부분도 궁금합니다.
이미 다 논의가 된거 같은데 하하하.
굳이 더하자면 저한테 집밥은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예요. 외식을 하거나 포장해서 먹는 게 훨씬 더 편한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집밥은 다른 사람한테 간섭 받을 일 없이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해서 끝나는 일련의 과정이라 좋은 거 같아요. 특히 자기가 선택한 가족과 함께이거나 혼자살 땐. 일할 때 사람들에게 받는 스트레스랑 성과에 대한 압박이 큰데 그런 거에서 탈피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계가 요리이기도 하는 거니까요. 공개 여부도 자신이 정할 수 있죠. 그러니까 자기 성향과 상황에 맞춰서 결정하면 되는 거라 생각해요. 집밥에서 제발 엄마 좀 그만 찾고!
9. “요리하는 남자가 섹시하다”라는 말도 하잖아요. 이런 트렌드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으하하하하하하하. 이 질문 너무 좋아요. 저는 ‘뇌섹남’이란 말도 띨띨한 남자들이 너무 많아서 나온 거 같았는데, 요섹남(…)은 ‘엄마 찾는 남자’가 하도 많아서 나온 거 같아요. 그리고 누가 그런 말을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섹시한 사람은 뭘 해도 그렇잖아요. 밥하는 정도로 섹시해진다는 건 좀 웃기고요. 프로페셔널들에게 끌리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요.
10. 요리 관련 아끼는 도구나 애착 가는 물건 혹은 꼭 장만하고 싶은 요리 도구가 있다면?
칼은 아직 제가 산 건 없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예전에 사오신 것과 함께 살았던 외조부모님께서 쓰시던 것들을 사용 중입니다. 나중에 스이신을 사용해보고 싶은데 아직은 먼 일 같고요. 팬은 현재 AMT사 제품을 잘 사용하고 있는데, 조금 작은 거랑 웍 하나 더 있으면 좋겠네요. 아, 파란 스타우브 냄비도요.
11. 마지막으로 나에게 집밥이란?
귀한 일상
# 이번 인터뷰는 평소 눈여겨 보고 있던 훈남 혁님이 대상입니다. 본인은 특별히 잘하는 게 없다고 겸손해하셨지만, 누구나 잡지 속 화보 같은 상차림이나 유기농 재료만 활용한 집밥을 해먹을 수는 없는 게 현실이잖아요. 혁님 말씀대로 “집에서 간단하게 맛있게 먹자”라는 정도면 충분하죠. 무엇보다 꼭 ‘한식 차림’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 “제발 집밥에서 엄마 좀 그만 찾고!!” 자신에게 맞는 집밥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하단 사실을 다시금 알게 되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걸 감사드리며, 뒤늦은 업데이트를 기다려주시는 모든 분께도 감사드립니다.